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와사키 미네코 (문단 편집) == 미네코의 언니들 == 미네코의 첫째 언니 야에코, 둘째 언니 키쿠코, 다섯째 언니 토미코도 [[게이샤]]였고, 미네코보다 먼저 이와사키 오키야에 들어갔다. 셋째 언니 쿠니코도 이와사키 오키야에 들어갔다. 그러나 언니들은 아토토리(후계자)가 되지 못했다. 사실 야에코는 재능이 뛰어나 이와사키 오키야의 아토토리로까지 거론된 인물이었으나, 어린 나이에 부모의 뜻에 따라 오키야에 보내진 그녀는 오키야에서의 생활을 좋아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두고두고 부모를 원망했다. 야에코는 13살이던 1938년에 [[마이코]](견습 게이샤)로 데뷔했다. 오늘날에는 [[의무교육]], [[아동학대]] 방지, [[아동노동]] 금지, 노동연령 등이 법으로 제정되어 최소 [[의무교육]]([[중졸|중학교 졸업]])을 마쳐야(만 15세 이상) [[게이샤]] 교육과정에 입문할 수 있다. 그러나 야에코가 수련을 받던 옛날에는 이렇게 15살도 되기 전에, 심지어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에 [[마이코]]로 데뷔하기도 했다. 마이코로 데뷔한 야에코는 나름 소질이 있었다. 그녀는 집 1채 값에 맞먹는 [[기모노]]를 여러 벌 가지고 있었고, 손님으로부터 어마어마하게 비싼 [[보석]]을 선물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게이샤]] 공부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야에코는 우에하라([[上]][[原]])라는 남자와 눈이 맞아 이와사키 오키야와의 계약을 멋대로 위반하고 오키야를 뛰쳐나와 결혼했고, 이로 인해 이와사키 오키야에 큰 손실을 입혔다. 그러나 남편은 못말리는 바람둥이였고, 야에코는 견디지 못하고 이혼한다. 이렇게 결혼생활이 실패로 끝나자, 그녀는 두 아들을 친정 부모에게 맡기고는 멋대로 이와사키 오키야에 돌아와서 “[[게이샤]] 일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떼를 썼다. 이렇듯 야에코는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고, 막내동생인 미네코와도 사이가 무척 나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야에코가 일방적으로 미네코를 무척 미워했다. 야에코의 큰아들 마모루는 미네코보다 3살 위, 작은아들 마사유키는 미네코보다 10개월 위였다. 미네코의 회고에 따르면, 마모루는 심술궂고 못된 아이였으나 마사유키는 형과 달리 얌전하고 착한 아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형과 함께 외가에 맡겨졌던 마사유키는, 12살 때 외가 근처의 강에서 놀다가 익사하고 만다. 야에코는 죄 없는 친정 부모와 형제들을 탓하며 원망했고, 친정에 맡겨놓았던 마모루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야에코는 15살이나 된 마모루를 이와사키 오키야에 데려와서 함께 살겠다고 우겼다. 이는 오키야의 규칙에 어긋나는 행위인데, 오키야는 여자들만 사는 합숙소이기 때문이다. 딸은 오키야에서 함께 살 수 있고 재능이 있으면 [[게이샤]]로 키울 수도 있지만, 아들과 함께 살고 싶은 여자는 오키야에서 나가 따로 집을 얻어야 한다.[* 그래서 [[게이샤]]들은 딸을 낳는 것을 선호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야에코가 억지를 부려서 마모루는 한동안 오키야에서 함께 살았지만, 마모루가 말썽을 일으키는 바람에 결국 야에코와 마모루 모자([[母]]子)는 이와사키 오키야에서 쫓겨났다. 둘째 언니 키쿠코는 [[게이샤]]로 몇 년간 일한 후 은퇴하여 결혼했다. 다섯째 언니 토미코는 [[중학교]] 졸업 후에 이와사키 오키야에 들어갔는데, 아토토리로 지명되기에는 나이가 많았다. 그래서 키쿠코와 같은 길을 택했다. 셋째 언니 쿠니코는 게이샤가 되기에 재능과 용모가 부족하여, 대신 오키야에 살면서 살림을 해주고 [[마이코]]와 게이샤들을 뒷바라지하는 [[가정부]] 역할을 했으며, 혼담을 다 거절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쿠니코는 미네코를 헌신적으로 돌봐 주었고, 미네코도 그런 쿠니코를 무척 좋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